1인 가구를 넘어 ‘프로 개인러’로
[목차]
01. 집이 하나여야 하나요?
02. ‘나’만을 만족시킬 공간
03. 다핵구조의 공간 파노라마
이제는 2인 자녀만 있어도 다둥이 세대라고 불립니다. ‘1인 가구의 급증’은 이미 식상한 말이 되어버렸죠. 1인 가구의 증가 현상은 벌써 한 세대라는 시간을 거치면서 새로운 문화 형태를 만들어내고 주력 소비층으로 각광받고 있습니다. 1인 가구는 2000년 이후 꾸준히 증가를 하고 있지만 이전의 1인 가구와 지금의 1인 가구에는 차이점이 있죠. 이전에는 비자발적 1인 가구가 많았다면 지금은 자발적 1인 가구가 늘고 있다는 것입니다. ‘나’에 대한 집중도가 높아지고 사회가 원하는 스텝을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삶을 주도적으로 살아가고자 하는 가치관 변화가 반영된 것이죠.
그리고 그 변화에 가장 민감하게 반응하고 모습을 바꾸는 것이 바로 '공간’입니다.
01. 집이 하나여야 하나요?
워케이션(workation: 일하면서 휴가를 즐김)이나 ‘5도(都) 2촌(村)’(5일은 도시, 2일은 농촌에 거주)이라는 말을 많이 들어보셨을 텐데요, 이러한 현상은 더욱 확산되고 다양화될 것으로 보입니다. 재택 근무가 활성화되었다고 하지만 아직은 직장에 출근하는 인구가 훨씬 많습니다. 도시에는 다양한 인프라가 갖춰져 있죠. 특히 우리나라는 국토가 작은데 반해 교통, 통신시설이 매우 잘 갖춰져 있어요. 따라서 매일 변화하는 삶의 요구들을 즉각적인 형태로 해결할 수 있습니다. 열심히 살고 재미나게 살기에 도시는 더없이 좋은 곳인데요, 도시에 사는 현대인이라는 표현 앞에 꼭 붙는 단어가 ‘바쁜’이었습니다. 하지만 비대면 기술의 보편화와 재택근무, N잡러 등 다양한 직업군의 출현으로 장소에 구애를 받지 않는 직종을 가진 이들 위주로 도시 외의 장소에서의 슬로 라이프를 꿈꾸는 사람들이 많아졌고 기술은 꿈을 실현시켜 주는 좋은 도구가 되어주었죠. 도시에서는 직장을 다니면 집에 머무르는 시간이 적어요. 따라서 집에서 할 수 있는 일도 적습니다. 대신 출근을 하지 않는 주말에는 지방에 세컨드하우스를 마련해 취미 활동을 한다든지 자연 풍광을 보며 휴식을 취하는 거죠. 도시에서는 크지 않은 공간에 머무르며 직장 생활을 하고 세컨드하우스에서 공간적 여유와 시간적 여유 모두를 누리는 것을 선택하는 것입니다.
세컨드하우스의 형태도 다양한데요. 농막주택을 개조하거나 마음에 드는 지방의 부동산을 구매하거나 임대할 수도 있습니다. 최근에는 스마트 모듈형 주택도 인기를 끌고 있는데요. 10평 미만의 단층 혹은 복층 구조로 이미 제작된 모듈식 주택을 가져와 조립 설치하는 방식입니다. 이미 대기업들에서도 자신들만의 스마트 기술을 접목시켜 모듈형 주택을 출시해 눈길을 끌고 있죠. 1인 가구는 이동이 편리하기 때문이 이러한 현상이 더욱 잘 접목되고 있는데요, 차박도 하나의 방법이 되고 있습니다. 캠핑카를 자신만의 취향으로 개조해 자유롭게 이동하면서 캠핑도 즐기고 자연을 만끽하고 지방의 여러 장소를 다니며 영감을 얻고 재충전한 후 다시 도시로 돌아옵니다.
02. ‘나’만을 만족시킬 공간
특히 1인 가구는 요리, 세탁, 청소 등 생활에 필요한 많은 요소를 아웃소싱합니다. 여기서 발생되는 공간의 여백과 시간의 여백을 나에게 맞게 활용할 수 있죠. 이 여백의 시공간은 개인의 취향을 고스란히 담아 기존의 자고 먹고 씻는 ‘집’이라는 모습에서 탈피해 ‘개인 맞춤 공간’으로 태어나게 됩니다. 많은 분들이 취미생활을 하고 있어요. 예전에는 전문 직업 분야였던 연주, 방송, 작곡, 디자인, 다양한 실내외 스포츠, 도자기나 가죽 제품 제작 등 정말 다양합니다.
취향을 집에 들이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미술품을 보는 것을 좋아하는데 바쁘다면 좋아하는 작가의 작품을 조금씩 모아 집을 전시 공간처럼 만드는 거죠. 헬스나 요가 룸을 만들기도 하고 다도를 위한 공간을 마련하기도 합니다. 영화 보기나 음악감상, 독서 같은 일반적인 취미도 더욱 깊게 즐길 수 있도록 공간을 만들어 소유하고자 하죠. 거실을 책으로 가득 채우고 개인 독서용 안락의자와 테이블을 맞춥니다. 또 방음 공사를 하고 작은 극장을 만들거나 오디오룸을 만들기도 하죠. 소량의 맞춤 가구와 스마트 기기의 보편화로 간단하게 시공할 수 있는 부분이 많아졌습니다. 개인의 취향이 반영된 공간은 집에 돌아와서 충전을 하기에 더할 나위 없이 도움이 되겠죠. 취미뿐만 아니라 직업 특성에 맞게 능률적인 재택근무 환경을 조성하기도 합니다.
아무리 집이 넓다고 해도 모든 취향의 공간을 넣을 수는 없죠. 집에 꼭 필요한 기능은 집 안에 넣고 나머지는 잘 만들어진 목적성에 맞는 공간을 필요한 만큼 소유하면 됩니다. 렌털이나 구독의 형태로 접근성도 좋아졌죠. 개인의 삶에 요구되는 틈새를 확대해 고급화시킨 공간서비스 콘텐츠들은 계속 늘어날 것입니다. 여기에 AI의 비약적인 발전이 접목되면 이 속도와 규모는 매우 커질 전망입니다. 지금보다 더 많은 공간적 경험을 빠르고 간편하게 소유할 수 있게 되겠죠.
이전에는 집을 구입하고 인테리어를 할 때 상당히 많은 사람들이 나중에 원활한 매매를 하기 위해 입주하기도 전에 누구일지도 모르는 다음 집주인의 마음에 들도록 자신의 취향을 지우고 깨끗하게 하는 것에 초점을 맞췄었습니다. 프로 개인러들인 1인 가구는 누군가들이 와서 볼 때 마음에 들려면, 나중에 팔 때 등을 생각해서 공간을 계획하지 않아요. 자가의 유무를 떠나 집의 주인인 내가 사는 동안 만족스럽고 편한 ‘나 전문 공간’을 만드는데 포커스가 맞춰져 있죠. 주도적인 삶은 주도적인 공간 계획에서부터 출발한다고도 할 수 있어요. 매일의 일상을 담은 그릇의 모양이 어떤가에 따라 나의 의식도 함께 담겨 변화하고 발전하기 때문입니다.
또 1인 가구라고 해서 작은 공간만을 선호하는 것은 아니에요. 20~30대는 다가구, 오피스텔의 비율이 높지만 40~50대는 80㎡ 이상의 아파트를 선호하는 편입니다. 하지만 이것도 2022년을 기점으로 전 세대의 아파트 거주비율이 증가하는 추세입니다.
(KB금융지주경영연구소 발표 ‘2022년 한국 1인가구 보고서’ 참조)
스마트한 자산관리를 하는 1인 가구가 늘고 리치 싱글이 늘어나면서 부가적인 공간을 만들고 자신만의 라이프 스타일을 공간에 표현하려는 경향이 나타납니다. 큰 방이 침실이 아니어도 되고 큰 주방을 작게 줄이기도 하고 거실에서 TV를 없애고 커다란 다이닝룸으로 만들기도 합니다. 혼족일수록 내가 입는 옷, 자주 가는 숍, 주로 먹는 음식 등 나만의 취향에 맞춘 곳을 선호하는데요. 취향을 배려해야 할 다른 사람이 없기 때문에 오로지 자신만의 편의와 취향으로 공간을 채우죠. 이들은 자신이 가장 잘 힐링되고 재충전할 수 있는 ‘나 전문 공간’ 만들기 선수들입니다. 이제 1인 가구는 소형을 선호할 것이라거나 4인 가구는 32평은 되어야 한다는 고정관념을 모두 내려놓는 것이 좋겠습니다. 이렇게 다양해지고 있는 가치관의 변화로 1인 가구의 (일시적 소유를 포함한) 2,3 주택이라든지 1인 가구 침실 면적의 축소 혹은 취미 공간 확대 등 다양한 현상들이 나타나기 때문이죠.
03. 다핵구조의 공간 파노라마
두 가지 관점에서 공간의 다핵화를 얘기할 수 있겠습니다. 집은 한 지역에 정착하는 곳이라는 개념과 생활에 필요한 것을 모두 집에 두어야 한다는 고정관념을 버리는 것에서 시작합니다. 첫 번째는 집을 정하고 한 곳에 오랫동안 거주하는 것이 아니라 원하는 지역, 나라에 원하는 기간을 정하고 거주지를 바꾸면서 다양한 문화 체험을 하며 경제 활동을 하는 지역적 다핵화의 경우입니다. 일은 서울에서 휴식은 충청도에서 할 수 있겠죠. 혹은 1년은 싱가포르에서 1년은 캐나다에서 머물며 지낼 수도 있습니다. 이동식 모듈주택을 구입해 여러 지역을 다니며 생활하기도 합니다. 5도 2촌이나 워케이션의 유행은 이미 상당히 공간의 다핵화가 진행되고 있다는 얘기인 거죠.
두 번째는 집 안에 모든 기능이 갖춰있지 않고 필요한 기능을 외부에서 빌려서 사용하는 기능의 다핵화입니다. 1인 가구는 자유로운 생활방식을 가질 수 있다는 장점이 있지만 세탁, 청소와 같은 살림에 관여되는 부분과 식사와 건강 관리에 대한 부분에 대한 스트레스가 상당한 것이 현실입니다. 그래서 주(住) 안에 필요한 의(衣), 식(食)에 관련해서 원하는 만큼 아웃소싱을 합니다. 빨래나 다림질 모두 비대면으로 수거해서 배달해 주는 업체를 사용하고 장 보는 것과 음식도 배달 앱을 사용해 해결합니다. 반려동물 케어나 집청소를 전문가에 맞기도 하죠. 꼭 필요하지만 단순 반복되는 일들은 아웃 소싱에 맡기고 나는 그 여분의 시간을 활용할 수 있게 되는 것이죠.
두 경우의 공통점은 소유하지 않는다는 점인데요. 하지만 갖게 되는 것도 많습니다. 내가 원하는 풍광과 기능을 공간의 다핵화 구조를 통해 언제 어디에서든 소유가 가능하게 되죠. 이것은 이동이 자유로운 개인이면서 직업적으로 이동의 제약이 없을 때 가능합니다. 아직까지는 출근하는 인구가 더 많지만 앞으로는 더욱 많은 인구가 출근이라는 형태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일할 수 있도록 사회적 기반이 확장될 것입니다. 이미 많은 테크 기업들에서는 이를 실행하고 성과를 내고 있죠. 스마트한 1인 가구는 나의 삶을 지속적으로 디벨롭하는 것에 초점이 맞춰져 있습니다. 경제적 독립과 더불어 공간적 독립을 이루어 그 공간 안에 자신만의 취향을 마음껏 펼치고 향유하며 스스로의 판단으로 언제든 변화시킬 수 있는 주도적 주체입니다. 이들에게 소유하지 않음으로써 나의 세계를 확장시킬 수 있는 새로운 방법들은 매력적으로 다가가죠.
하지만 이러한 현상이 1인 가구이기 때문에 생기는 건 아니에요. 자녀가 있는 맞벌이 부부세대, 노인 부부세대에서도 나타나는 현상입니다. 이전 글 <Nook를 아시나요>에서도 말씀드렸듯 4인 가족도 1인 가구입니다. 점점 더 개인의 취향이 존중받고 중요시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1인 가구’라고 하면 20~30대로 경제적인 자립을 하고 자신의 라이프 스타일을 중요시하는 젊은 세대를 떠올리실 겁니다. 하지만 지금의 고령화와 더불은 저출산이 가속화되면 지금의 젊은 1인 가구가 고령화되고 청년층이 줄어듦에 따라 많은 1인 가구 내 상당 비율을 6,70대가 차지하게 될 거예요. ‘1인 가구 라이프’의 문을 열고 안정화 단계를 거친 경제적 기반을 가진 ‘실버 1인 세대’가 더욱 많아질 것이라는 거죠. 이들의 삶이 누군가들에게 멋져 보이고 합리적으로 비친다면 조만간 1000만 1인 가구를 넘어서 ‘초개인화 사회’가 될 텐데요. 이러한 현상은 비단 우리나라에만 국한된 것이 아닌 세계적인 현상입니다. 늘어난 기대 수명과 AI의 발달로 언어나 지역적 장벽이 낮아져 한 국가, 한 직업에 머무는 것이 아닌 다양한 지역에 거주하고 여러 개의 다양한 직업을 갖는 것이 가능해졌기 때문입니다. 이런 산업 구조의 변화는 가치관의 요구와 맞물려 순환 증대되며 자연스럽게 새로운 형태의 공간들을 필요로 할 것이고 공간은 필요를 해결하며 문화의 형태로 발전해 나갈 것입니다. 지금이 아니더라도 우리는 누구나 일생을 살면서 한 번은 1인 가구를 경험해야 할 수 있어요. 기술적 시스템의 발전 위에 사회적 시스템과 인식의 동조가 형성되었을 때, 스마트 툴을 넘어선 AI 시대 속 개인의 삶을 살아야 할 우리는 공간을 어떻게 마주해야 할까요? 아마도 보다 유연하고, 훨씬 개방적인 마인드의 슈퍼 개인이 되어야 할 것 같습니다.
이번에는 개인이 중요해지는 사회 속 1인 가구의 공간의 변화에 대해 얘기해봤습니다. 1인 가구의 증가가 개인화로 인한 파편화를 가져오는 것이 아니라 개인들의 다양한 취향과 관점이 반영된 다채로운 공간의 변주로 이어지길 기대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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