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공간의 재구성
[목차]
01. 지금 버려야 할 단 한 가지, 고정관념
02. 이름표를 떼 줘
03. 공간의 재구성
왜? 라는 질문을 던져본 적, 얼마나 있으신가요? 왜 이런 방식으로 할까, 왜 이런 모양이 되었을까 등등. 우리는 주어진 상황에는 최선을 다하고자 하지만 왜 그렇게 하고 있는지에 대해 질문을 던지지는 않는 것 같습니다. 지금껏 그래왔고 앞으로도 그럴 거니까 의식하지 않고 하는 거죠.
공간 설계를 하다 보면 수많은 질문들과 마주하게 됩니다. 거실에 소파가 있어야 하는지, 가장 큰 방을 꼭 침실로 써야 하는지, 좁은 주방에 모든 가전들과 식탁까지 들어가야만 하는지, 수납은 꼭 벽을 메운 붙박이장으로만 해결해야 하는지, 샤워실과 변기는 꼭 한 공간에 있어야 하는지, 발코니는 좁고 길어야만 하는지 등등. 어느 집이나 그렇게 사용하고 있는 것에 대해 왜? 라는 질문을 던지고 파고들곤 합니다. 질문이 없다면 고민도 없겠죠. 있는 것 안에서 예쁘게 만들면 될 것 같은데 꼭 필요하지 않아 보이는 질문을 끊임없이 던지는 건, 왜일까요?
‘좋은 질문’은 ‘좋은 답’을 끌어내기 때문입니다.
01. 지금 버려야 할 단 한가지, 고정관념
지난 약 20여 년 간을 돌아보면 우리의 일상에는 많은 변화가 있었습니다. 스마트폰, 스마트 모빌리티, 증강현실, SNS, 빅데이터, 배송 서비스, 블록체인, 기후변화, 사물인터넷, 팬데믹, AI 등 100년에 걸쳐 이루어질 법한 변화가 압축적으로 일어났죠. 기술의 발전과 더불어 삶의 질에 대한 관심도가 높아지면서 삶의 방식도, 가치관도 변화했습니다. 그리고 다양한 경험을 추구하고 보다 편리한 생활을 위한 새로운 디바이스들이 생겨났습니다.
이런 변화들에 비해 공간의 구조나 크기는 변하지 않았습니다. 근래 지어진 건물들이라고 해서 크게 다르지는 않죠. 거실을 확장하고 오픈 플랜으로 거실과 주방을 하나의 공간으로 설계하지만 분양 도면을 보면 공간들의 배치 형태와 사이즈는 거의 변화가 없습니다.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국민 평수라 불리는 약 32평의 일반적인 구축아파트의 평면도를 보면 대개 방 3개, 거실 1개, 주방 1개, 발코니 2~3개, 욕실 1~2개, 현관으로 되어 있습니다. 집 안으로 들어가 볼게요. 약 1.2m*1.2m의 현관은 공간 자체도 작지만 신발장 수납도 부족한 편입니다. 현관문을 열면 집 전체가 한꺼번에 시야에 들어옵니다. 현관문의 정면에는 주로 화장실 문이 마주하고 있습니다. 주 침실인 큰 방은 침대와 옷장으로 가득 차있고 나머지 2개의 작은 방은 아이들 방이 되거나 옷 방 혹은 창고처럼 수납 용도로 사용합니다. 안방에 욕실이 있는 경우는 사용성이 매우 떨어지는 크기여서 불편하다 보니 잘 사용하지 않습니다. 가장 넓고 채광이 좋은 공간인 거실에는 TV 1대와 소파 1대가 서먹서먹하게 마주 보고 있습니다. 반면 주방과 다용도실에는 덩치가 큰 냉장 냉동 가전들이 빼곡히 어깨를 붙이고 서있는 편입니다. 그 사이에는 오븐과 식기세척기, 커피 머신, 에어프라이어, 전자레인지, 밥솥, 식기 건조대, 토스터기가 사이사이 들어가 있습니다. 간신히 자리를 잡은 식탁에 가족들이 모두 앉으려면 주방으로 들어가는 동선이 불편해지곤 합니다. 다용도실에는 보일러가 있을 수도 있는데 워시타워를 들여놓으면 가득 차곤 합니다. 생각만 해도 스트레스를 받죠.
그런데, 이 구조는 잘못된 것이 없습니다. 건축 당시에는 이 정도 구조와 사이즈로 충분히 생활하기 편리했기 때문입니다. 부부 침실에 옷장을 두는 것만으로 수납이 되었고 주방에서는 냉장고 1대를 사용했습니다. 물건은 상점에 가야 구매할 수 있었고 주말이면 식구들이 함께 모여 거실에서 TV를 보면서 대화했습니다. 시대가 빠르게 변화한 것이죠.
집합건축물의 내부 크기를 마음대로 바꾸는 것은 매우 어렵습니다. 이사를 가는 일도 쉽지는 않지요. 때문에 현재의 공간을 재해석하고 재배치해야 합니다. 아이디어를 내고 발상을 전환해야 합니다. 여기에 방해물이 있다면 단 한 가지, 공간에 대한 고정관념입니다.
02.이름표를 떼 줘
아파트의 도면에 대한 얘기를 해보겠습니다. 주로 아파트의 평면도를 많이 보셨을 겁니다. 아파트의 입면도를 볼까요? 건축적으로 관리와 시공성, 안전을 위해 설비 시설이 많이 필요한 공간은 같은 열에 배치합니다. 우리 집 화장실 위에는 윗집 화장실이 있고 아래는 아랫집 화장실이 있죠. 주방 위는 주방입니다. 현관 아래는 현관이고 베란다 위는 베란다입니다. 그리고 안방 위에 안방이 있죠. 재미있는 건 안방의 침대 자리 위에 윗집도 침대가 있을 확률이 높다는 것입니다. 집합 건물의 특징이기 때문에 비단 아파트만의 얘기는 아닙니다.
그런데 인터넷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평면도에는 평수나 구조와 상관없이 한 가지 공통점이 있습니다. 바로 공간마다 이름이 적혀 있다는 점입니다. 침실, 거실, 주방, 서재, 드레스룸. 물론 편의상 써놓은 것이겠지요. 하지만 실제로 대부분 이것에 따라 공간을 배치하곤 합니다. 누가 써놓은 것인지도 모르는 이름표 대로 살고 있는 거죠. 집에서 가장 큰 공간들을 침대와 소파에게 내어주고 좁다, 답답하다 불평하면서 살아야 할까요? 채광이 좋은 안방에 침대를 두고 두꺼운 암막커튼을 달아야 할까요? 냉장 기술이 더없이 발달한 지금, 해가 들지 않는 방향에 주방이 있어야 할까요? 큰 거실을 서재로 써야 할지 TV를 두어야 할지 둘 중에 골라야 할까요? 의문은 끝이 없는 것 같습니다.
국토교통부가 발표한 <2022년 주거실태조사>에 따르면 2021년도 기준 우리나라 전체 가구 중 아파트 거주 비율은 약 51.9%입니다. 국민의 절반이 아파트에 거주하고 있는 것인데 정작 아파트 공간에 대한 고민은 그다지 느껴지지 않는 것 같습니다. 보통 인테리어를 준비할 때 가장 먼저 하는 것이 SNS에서 남의 집 사례를 찾아보는 일일 겁니다. 인테리어를 할 때에는 많은 비용과 시간이 소요됩니다. 그런데 정작 나와 우리 가족의 생활패턴과 앞으로의 생활에 요구되는 공간에 대해 생각하는 것보다 남들은 어떻게 했는지 사진을 찾아보는 일을 가장 먼저 합니다.
집을 들여다보면 그 사람의 '마인드'와 '현재'를 읽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현재는 미래를 만들어내죠. 인테리어를 새로 해도 변화가 없다면 지금과 같은 미래를 재생산해 내기 쉽습니다. 여러 이유로 인해 내가 지향하는 삶이 공간적 제약으로 인해 방해를 받고 있었다면 당연히 현재 공간에 대한 점검이 가장 우선순위의 액션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평면도에 쓰인 이름표를 떼고 나에게, 우리 집에 맞는 공간을 만들기 위해 재해석해야 합니다. 거주자의 생활패턴, 취향, 앞으로 그리고 싶은 삶의 방향을 계획하고 그에 필요한 공간이 무엇인지 생각해야 합니다. 참고할 자료를 찾는 것은 이 다음 단계에 필요한 일입니다.
03. 공간의 재구성
우리의 공간에 대한 인식과 요구는 상당히 높은 수준까지 올라와 있습니다. 하지만 주어진 공간은 무척 제한적입니다. 실제 인테리어를 준비할 때 가장 많이 하는 고민은 주방 설계와 수납에 대한 고민일 수 있습니다. 약 30평대의 구축아파트의 공통된 고민은 어떻게 하면 좁고 긴 형태의 주방에 식기세척기와 광파오븐, 냉장고 2대를 놓고 충분한 수납과 조리대를 확보하면서 아일랜드 혹은 테이블을 둘 수 있을까 하는 것입니다. 물리적으로 쉽지 않은 내용입니다. 기기들을 다 넣으면 수납이 부족할 테고 원하는 사이즈의 테이블까지 넣으면 동선 확보가 되지 않겠죠. 그런데 정말 안 되는 것일까요? 외국 잡지에 나오는 것처럼 채광을 가득 받아들이는 전창을 옆으로 두고 충분한 팬트리 공간을 확보한 대면형 주방과 큰 테이블을 배치하는 것이 불가능할까요? 평면도를 내려다보고 이름 붙여진 기능을 모두 지운 후 그저 ‘구획된 공간’으로 인식한다면 공간을 얼마든지 재해석할 수 있습니다.
식당 공간은 영어로 Dining-room입니다. 욕실은 bath-room, 거실은 Living-room이죠. 서양의 주거 공간은 현관에서 복도와 계단을 따라 이동해 각각의 용도가 부여된 room으로 이어집니다. 각 방들은 용도에 따라 응접실이 되기도 하고 침실, 서재가 되기도 합니다. 그래서 거실도 room이 될 수 있는 것이죠. 요즘은 오픈 플랜(Open plan. 벽으로 막지 않고 다른 성격의 공간을 열린 공간 안에서 융합시키는 공간 설계 방식)으로 설계된 주거 공간도 많지만 이 개념은 20세기 중반이 되어야 등장하게 됩니다. 두 차례에 걸친 세계대전으로 인한 철강 산업 기술의 발달로 공간을 분리할 때 건물의 하중을 받쳐주는 벽구조체에서 기둥 구조체 건축이 가능해지면서 넓은 공간을 만들 수 있게 되어 공간 간의 융합이 가능하게 된 것이죠.
반면 우리는 방과 거실의 개념을 열린 공간과 닫힌 공간으로 구분해서 인식합니다. 우리나라 아파트의 평면도는 한옥에서 시작합니다. 남쪽을 향해 창을 낸 방들은 마루를 가운데 두고 좌우로 놓여있죠. 부엌은 음식물이 덜 상하도록 해가 들지 않는 북쪽에 위치시킵니다. 거실을 집의 가운데에 두고 안방과 작은 방을 거실의 좌우에, 북쪽에는 주방을 설계한 이유입니다. 마당에서 마루로 올라가는 경계에 벽이나 문은 없습니다. 기둥 사이로 열려있는 마루는 바닥의 단 차이를 이용해 외부와 구분 지으면서 안으로 연결시킵니다. 방으로 들어가는 경계에만 문이 설치되어 있습니다. 만일 아파트의 거실 자리에 문이 달려 있다면 우리는 방으로 생각하겠죠.
이제, 고정관념을 깨 보겠습니다.
큰 거실을 방으로 사용하면 굉장히 많은 변화를 만들어낼 수 있습니다. 하나의 공간으로만 만들 필요도 없고 다양한 공간 구획과 생성이 가능합니다. 식물을 키우는 것을 좋아한다면 좁고 긴 베란다에 화분을 늘여 놓거나 확장한 거실 창가를 화분들로 채워 복잡하게 만들지 말고 작은 방을 베란다로 만들어 차를 마실 수 있는 작은 정원처럼 만들 수도 있습니다. 거실을 확장하는 이유는 공간을 넓게 사용하기 위해서지만 실제 확장된 면적에서 효율적인 활용은 거의 일어나지 않는 시각적인 확장인 경우가 많습니다. 팬데믹을 지나오면서 자연에 대한 니즈가 늘어난 만큼 반대로 발코니의 면적을 확장해 자연을 집 안으로 들여오는 효과를 누릴 수도 있습니다. 거실과 주방의 위치를 바꾸면 고급 주택도 부럽지 않은 공간이 탄생합니다. 채광이 잘 들지 않는 주방은 북쪽에 주로 위치하고 있어 암막커튼을 달지 않아도 되고 영상 시청을 하거나 서재로 사용하기에 딱 좋은 공간입니다. 확장된 거실 자리로 옮겨간 주방에는 밝은 채광이 쏟아지는 전창을 90도로 둔 대면형 주방을 설치하고 긴 테이블을 두어도 넉넉한 공간이 됩니다. 후드 일체형 인덕션을 사용하면 시야를 가리지도 않죠. 북쪽의 기존 주방은 조리대로서만 활용하고 가장 가까운 동선의 작은 방을 다이닝 공간으로 사용할 수도 있습니다. 반대로 작은 방으로 주방을 옮기고 주방 자리에 다이닝 공간 만들 수도 있습니다. 이 경우 주방은 문이 달린 형태의 공간이 되기 때문에 조리로 인한 냄새가 집 전체로 퍼지는 것을 막아줄 수 있는 장점이 있죠. 현관에는 꼭 중문을 두어야 할까요? 신발장 깊이의 수납장을 현관 정면에 설치하고 내부로의 진입 동선을 90도 돌려주면 수납을 두 배로 늘리고 프라이버시도 지킬 수 있어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죠. 아이디어는 끝이 없습니다.
공간에 대한 고정관념을 내려놓는다는 것은 면밀한 고민의 시간을 필요로 합니다. 무턱대고 고정관념을 깨야겠다는 생각으로 접근하면 거실 확장부에 식탁을 두는 것과 같은 어리석은 결과물을 만들어냅니다. 집에서 가장 긴 동선인 주방에서 발코니까지의 거리를 음식이 담긴 식기를 들고 매번 이동하게 만드는 불편함까지는 생각하지 못한 결과입니다. 창가에 테이블이 있으면 카페처럼 느낄 것 같다는 막연한 상상에서 기인한 거죠. 공간은, 특히 제약이 있는 공간은 사용자의 입장에서 효율적이어야 합니다.
‘좋은 질문’이 ‘좋은 답’을 끌어낼 수는 있습니다. 하지만 실제 구현하는 것은 또 다른 이야기가 됩니다. 하고 싶어도 실제 설계가 불가능한 경우도 있을 수 있습니다. 제대로 된 고민 없는 엉뚱한 설계가 나올 수도 있고 기술력이 부족한데 무리한 시공을 하면 아랫집에 피해를 주게 될 수도 있죠. 구조적인 시공 가능성의 정확한 판단과 시공적인 결함을 제거한 안전한 시공, 그리고 무엇보다도 이러한 생각의 궤를 함께해 줄 클라이언트의 마인드가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마음만 있다고, 기술만 있다고 되는 것이 아니지요.
하지만 공간에 대한 고정관념을 버리고자 하는 고민과 시도는 의미가 있습니다. 물리적으로 제한된 공간에서 다른 차원의 경험을 가능하게 하고 더 나은 미래를 만들어낼 수 있는 전환점이 됩니다.
제한된 공간 안에 다양한 현재를 담고 나은 미래를 설계할 수 있는 방법은 단 한 가지는.
공간에 대한 고정관념을 깨는 것입니다.
※ 해당 콘텐츠 중 '주거실태'에 관한 내용은 국토교통부 <2022년 주거실태조사>에서 발췌하였습니다.
※ 상기 시공 이미지와 제품 및 디자인, 색상 등은 화면 해상도 등에 따라 실제와 차이가 날 수 있습니다.
※ 단종 및 디자인 변경 등으로 동일한 제품 구매가 어려울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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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당 콘텐츠의 내용은 필자의 주관적인 의견으로 (주)엘엑스하우시스의 공식적인 입장이 아님을 밝힙니다.
※ 해당 콘텐츠 내 이미지는 클립아트 코리아에 유료로 제공받아 제작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