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 지아쿤을 통해 바라본 중국 전통 건축의 미

2025 프리츠커상이 증명한 중국의 건축 미학은?

류 지아쿤을 통해 바라본 중국 전통 건축의 미

2025.0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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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01. 프리츠커상을 받은 류 지아쿤은 누구일까?
02. 중국 건축 미학의 핵심
(1) ‘축’과 ‘대칭’의 원리
(2) 비대칭과 자유로움, 원림
(3) 건물을 하나로 이어주는 회랑
03. 중국 건축에서 드러나는 미의식
(1) 조화와 균형의 중시
(2) 감상하는 공간으로서의 건축



건축계의 노벨상으로 불리는 2025년 프리츠커 건축상의 영예는 중국 청두 출신의 건축가 류 지아쿤에게 돌아갔습니다. 류 지아쿤은 지역성과 공동체성을 깊이 반영한 건축으로 도시와 사람, 자연을 연결하는 작업을 지속해 왔으며, 전통과 현대를 조화롭게 아우르는 독창적인 건축 철학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특히 그의 작품은 중국 건축 미학의 중요한 진전을 보여주고 있는데요. 이번 글에서는 프리츠커상을 받은 류 지아쿤을 중심으로, 중국 전통 건축이 지닌 미적 원리와 미의식을 살펴보고, 그것이 그의 건축물에서 어떻게 구현되었는지 함께 탐구해 보겠습니다.




01. 프리츠커상을 받은 류 지아쿤은 누구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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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6년 중국 청두에서 태어난 류 지아쿤은 어린 시절 대부분을 병원 복도에서 보냈습니다. 어머니를 비롯한 가족 대부분이 의사였으나, 그는 의학보다 예술에 더 큰 관심을 가졌습니다. 그는 그림을 그리며 문학을 탐구하던 중, 한 선생님의 추천으로 건축이라는 직업을 알게 되었고, 이후 1978년, 충칭 건축공학 학교(현재 충칭대학교)에 입학했습니다. 건축이 무엇인지 정확히 알지 못했지만, 그는 "마치 꿈처럼, 갑자기 내 삶이 중요하다는 걸 깨달았다"고 회상합니다.

 
1999년, 류 지아쿤은 건축을 강력한 힘을 지닌 예술로 여기며, 지아쿤 건축사무소를 청두에 설립했습니다. 그는 40년 동안 팀과 함께 중국 전역에서 30개 이상의 프로젝트를 수행하며, 학문적·문화적 기관, 공공 공간, 상업 건물, 도시 계획 등을 설계해 왔습니다. 2025년, 프리츠커 건축상 심사위원단은 그를 다음과 같이 평가했습니다. "정체성은 개인뿐만 아니라, 장소에 대한 공동체적 소속감과도 연결됩니다." 심사위원단은 류 지아쿤이 중국 전통을 단순한 향수의 대상으로 바라보지 않고, 이를 혁신의 출발점으로 삼는다고 평가했습니다. 그렇다면, 류 지아쿤은 중국 전통을 어떻게 혁신의 출발점으로 삼아 자신만의 독창적인 건축 언어로 풀어냈을까요?




02. 중국 건축 미학의 핵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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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 지아쿤은 프리츠커상을 받고 “건축은 무언가를 드러내야 합니다. 지역 주민의 고유한 특성을 추상화하고 정제하며 가시화해야 합니다. 건축은 인간의 행동을 형성하고 분위기를 조성하며 평온함과 시적 감각을 제공하는 동시에, 연민과 자비를 불러일으키고 공동체의 공유된 감각을 길러주는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며 수상소감을 밝혔습니다. 그가 건축을 통해 드러내고자 한 ‘무언가’가 궁금해지는데요. 이제부터 중국 건축 미학의 핵심 요소를 하나씩 정리하면서, 류 지아쿤이 이를 현대적으로 어떻게 재해석했는지 함께 알아보겠습니다.




(1) ‘축’과 ‘대칭’의 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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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건축을 이해하고자 할 때 꼭 알아야 할 개념 중 하나가 바로 ‘사합원(四合院)’입니다. 사합원은 ‘ㅁ’자 형태의 주택 구조로, 가운데에 중정(안뜰)을 두고, 본채와 동・서쪽 곁채, 문간채, 사랑채가 둘러싼 주거 형식인데요. 중앙을 가장 중요한 공간으로 두고, 여러 겹의 건물이 이를 감싸는 방식을 따릅니다. 이는 중국이 세계 중심이라는 전통적인 중국인의 세계관과도 연결되죠.

이러한 사합원은 ‘축’과 ‘대칭’이라는 중국 건축의 미적 원리를 잘 보여줍니다. 남북을 잇는 종축(중심선)을 기준으로 건물이 완벽하게 대칭을 이루며 배치되는데, 이러한 건축 원칙은 일반 가옥뿐만 아니라 왕궁에서도 동일하게 적용되었습니다. 류 지아쿤의 노바티스(상하이) C6 블록 역시 이러한 엄격한 대칭을 반영한 대표적인 건축물이라 할 수 있겠죠.



(2) 비대칭과 자유로움, 원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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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에서 규모가 큰 정원을 ‘원림(園林)’이라고 부릅니다. 원림은 자연을 주제로 한 건축 문화의 일부로, 도가 사상에 근간을 두고 있습니다. 도가는 인간과 자연이 분리될 수 없는 하나의 존재라고 보았고, 이런 사상이 반영된 원림은 비정형적이고 비대칭적이며 신비로운 분위기를 띠게 되었습니다. 원림의 핵심은 인공과 자연의 조화입니다. 연못과 기석을 중심으로, 나무와 화초, 누각과 정자 등을 정교하게 배치하여 자연과 어우러지는 공간을 만듭니다. 자연 그대로의 모습을 살리기 위해 곡선적인 구성을 많이 활용하죠. 이러한 원림의 자유로운 공간 구성은 사합원의 엄격한 축과 대칭 중심의 구조와는 사뭇 대조적인데요. 이처럼 질서 정연한 사합원과 자연스러운 원림이 조화를 이루는 것이 중국 전통 건축의 중요한 특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류 지아쿤의 건축 중에서는 특히 루예위안 석조 예술 박물관에서 원림의 특성을 엿볼 수 있습니다.



(3) 건물을 하나로 이어주는 회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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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건축에서 빼놓을 수 없는 또 하나의 중요한 요소는 ‘회랑’입니다. 건물을 둘러싼 회랑은 실내와 외부 공간인 정원을 이어주는 매개체면서, 저마다 분리되어 배치된 건물들을 하나의 유기체로 묶어 줍니다. 날씨와 관계없이 비나 바람을 피하며 건물 안에서 편리하게 이동할 수 있도록 돕기도 하죠. 박물관, 호텔, 카페, 서점 등 다양한 시설들이 결합된 송양 문화 마을 역시 이러한 회랑 개념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장소입니다. 길게 이어진 복도를 통해 여러 건물을 하나로 묶으며 자연과 유연하게 연결되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03. 중국 건축에서 드러나는 미의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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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축과 대칭의 질서, 자연과 조화를 이루는 원림, 그리고 회랑을 통한 연결성 등 중국 건축의 미적 원리를 알아보았습니다. 건축은 단순한 구조물이 아닌, 그 시대의 사상과 문화를 담아내는 공간입니다. 중국 건축의 핵심 요소를 통해 중국인의 사고방식 속에 깊이 뿌리내린 우주관과 미의식을 엿볼 수 있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중국인의 미의식은 건축 속에 어떤 방식으로 구현되었을까요?



(1) 조화와 균형의 중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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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전통 건축에서는 주변 환경과의 조화미를 무엇보다 중요하게 여겼습니다. 이는 중국의 생활 방식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데요. 오랜 기간 농경 사회를 유지해 온 중국에서는 공동체 생활이 필수적이었고, 농업은 높은 노동력과 사람들과의 협력해야 했습니다. 이처럼 질서와 조화를 중요시하는 미의식이 건축과 조형물에서도 반영되었죠. 자연 속에서 인공 요소가 지나치게 두드러지는 것보다는, 전체적인 어울림과 균형을 강조하는 경향이 강했습니다. 이러한 미의식은 류 지아쿤이 설계한 쓰촨 미술학원 조소과 건물에서도 잘 드러납니다. 녹이 슨 듯한 붉은 톤의 외관은 주변의 붉은색 계열의 공장 건물과 조화를 이루며, 기존 환경과 조화를 이루려는 건축가의 의도를 반영하고 있습니다.



(2) 감상하는 공간으로서의 건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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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전통 정원은 감상자의 시선과 움직임에 따라 다양한 풍경을 연출하도록 조성되었습니다. 이는 중국 예술 전반에 흐르는 미의식인 ‘의경(意境, 경치를 통해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분위기)’과 연결되는데요. 한 곳에서 특정 경관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공간을 이동하면서 자연스럽게 변화하는 풍경을 감상하도록 유도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여기에서 회랑과 복도가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이들은 공간과 공간을 연결하는 기능과 더불어, 감상자가 걸음을 옮길 때마다 변화하는 시각적 경험을 제공합니다. 류 지아쿤의 대표작인 웨스트 빌리지는 5층 규모의 건물로, 자전거 이용자와 보행자를 위한 완만한 경사 길이 건물 외곽을 감싸도록 설계되었습니다. 덕분에 건물을 오르내리며 주변 자연과 도심 환경을 동시에 투과하여 조망할 수 있는데요. 건축 자체가 하나의 감상 공간이 되는 중국적 미의식을 잘 보여줍니다.


지금까지 2025 프리츠커상을 수상한 류 지아쿤을 통해 바라본 중국 전통 건축의 핵심 요소와 중국인의 미의식을 살펴보았습니다. 류 지아쿤은 40년 넘게 작품을 통해 문화, 역사, 자연에 대한 존경을 표현하며, 중국의 역사와 지역성을 반영한 건축을 지속적으로 탐구해 왔습니다. 루예위안 석조 예술 박물관, 노바티스(상하이) C6 블록, 에를랑 타운 천보 동굴 지구의 개조, 쓰촨 미술학원 조소과 건물, 웨스트 빌리지 등 그의 작품들은 전통적인 중국 건축 미학의 요소를 현대적으로 발전시킨 사례로 볼 수 있습니다. 그는 CNN과의 화상 인터뷰에서 ‘전통의 형태보다는 주제에 초점을 맞춘다면 전통은 계속될 것’이라고 밝힌 바 있습니다. 이는 우리가 전통 건축을 어떻게 바라보고 계승해 나가야 할지에 대한 중요한 통찰을 던져 줍니다. 올해 54회를 맞은 프리츠커상은 지금까지 일본 출신 수상자가 9명으로 가장 많고, 그 다음으로 미국이 8명을 배출했습니다. 아쉽게도 한국인 수상자는 아직 없지만, 조만간 우리나라에도 프리츠커상 수상자가 나오길 기대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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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당 콘텐츠 중 류 지아쿤에 대한 내용은 프리츠커 건축상에서 제공한 자료를 참고하였습니다.

※ 해당 콘텐츠 중 중국 건축 미학의 핵심과 중국 건축에서 드러나는 미의식 내용은 <동아시아 전통 인테리어 장식과 미 저자: 박선희 지음>을 참고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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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당 컨텐츠의 내용은 필자의 주관적인 의견으로 (주)엘엑스하우시스의 공식적인 입장이 아님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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